게임이 세상을 바꾸는 법 - 게임의 진정한 가치와 변화의 힘 | 도서 리뷰

세상은 이야기로 만들어졌다라는 책을 읽으면 서사의 힘이 우리 현실에 미치는 영향을 설명하면서 게임을 언급합니다. 그와 동시에 인용된 책이 게임이 세상을 바꾸는 법이었습니다.. 게임을 좋아하는 사람으로서, 제목만으로 충분히 흥미로우니 도서관에서 책을 빌려왔습니다. 막상 책을 다 읽고 나서 보면 이 책에서 게임 스토리텔링에 대한 언급은 많지 않습니다. 그보다는 좀 더 ‘게임’이라는 매체가 사람의 행동 변화에 얼마나 큰 힘을 발휘하는지, 그래서 어떻게 현실을 바꿔왔거나, 바꿀 수 있는지를 상세하게 설명한 책이었습니다.

2012년에 초판이 나왔는데 제가 빌려본 책은 2023년에 인쇄된 2판이었는데요. 다만 특별히 개정판에서 추가된 내용이 있다는 언급을 찾지 못했으므로, 더구나 ‘포스퀘어’가 성공 사례로 언급되는 걸로 봐서는 10년이 넘은 예전 기준으로 작성된 책인 것으로 보입니다. 따라서 언급된 게임 사례는 꽤 오래되었고, 한국인 기준으로는 낯선 게임이 대다수입니다. 그럼에도, 책에서 다루고자 하는 논지의 골자는 게임이라는 것이 가진 근본적인 원리를 다루고 있으므로, 2024년에 읽기에도 충분히 흥미로운 책이었습니다.

도대체가 왜 게임은 이렇게 재밌지?

책을 읽다가 굉장히 마음에 드는 문구가 있었는데요. ‘게임’이라는 것이 무엇인지를 아주 간결하게 요약해 줍니다.

게임을 한다는 것은 불필요한 장애물을 극복하기 위해 자발적으로 도전하는 행위다.

이와 더불어 게임을 구성하는 주요 요소, (1) 목표 (2) 규칙 (3) 피드백 시스템 (4) 자발적 참여를 제시합니다. 게임 산업이 무시 못할 규모로 커지면서 정말 다양한 장르가 존재하지만 결국 그 모든 게임을 관통하는 시스템은 하나입니다. 게임을 플레이할 모종의 ‘목표’죠. 그 목표가 스토리 엔딩일수도, 퀘스트일수도, 보스일수도, 혹은 아주 오랜 시간 동안 게임을 플레이했다는 사실 그 자체일 수도 있습니다.

목표에 도달하는 과정에 ‘규칙’이 적용됩니다. ‘규칙’에 따라 ‘피드백 시스템’이 작동해서 내게 모종의 정보이자 보상을 전달합니다. 그리고 이 모든 과정은 전적으로 ‘자발적 참여’에 의해 이루어집니다.

이 중에서도 저자는 ‘자발적 참여’의 중요성을 책의 지면 전체에 걸쳐 강조합니다. 게임에 대한 편견어린 시선은 게임이 마치 그 자체로 즉각적인 쾌락과 도파민을 제공하는 것처럼 묘사하는데요. 게이머라면 공감하시겠지만 실상은 그렇지 않습니다. 직장인이라던가 조금만 나이 든 세대에 접어 들어도 게임 불감증이라는 용어를 쉽게 듣고 겪을 수 있으니까요.

게임이 재미있으려면 순전히 좋아서 그 게임을 하고 있는지가 가장 중요합니다. 인터넷으로 들은 썰이라 사실 여부는 모르지만, 전문 프로게이머를 육성하는 학원을 다니다 보면 생각보다 중도 포기를 하는 사람들도 꽤 있다고 합니다. 게임이 그 자체로 재밌기만 하다면 중도 포기할리가 없겠지만, 사실은 게임도 결국 해야 해서 하는 일이면 업무나 운동을 지루해하는 것과 별반 다를 것이 없다는 의미겠죠.

그렇다면 자발적으로 게임을 즐기게 하는 원동력은 무엇일까요? 목표가 눈에 보이도록 명확하고, 목표를 달성해냈다는 보상을 매우 즉각적이고 직관적으로 제공하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여기서 목표를 달성하는 과정은 보통 쉽지 않습니다. 게임의 장르와 레벨 디자인에 따라서 일정량의 스트레스가 발생합니다. 책에서는 이를 ‘유스트레스’라는 용어로 설명합니다.

유스트레스는 일반적으로 긴장되거나, 불쾌하거나, 화나는 상황 등에서 발생하는 부정적 스트레스와 반대되는 개념입니다. 가장 큰 차이점은 내가 자발적으로 스스로에게 부과한 스트레스라는 점입니다. 예를 들어 게임을 좋아하는 사람은 자연스레 더 어려운 난이도에 도전하고 싶은 욕구를 느끼고, 그 과정에서 도전 실패, 즉 스트레스를 겪습니다. 이때 겪는 유스트레스는 내가 스스로 선택한 스트레스기 때문에 낙관적인 태도를 유지할 수 있습니다. 다시 말해, 스트레스를 해결할 수 있다는 믿음이 활성화되는 긍정적인 결과를 가져옵니다.

즉, 게임의 핵심은 내가 감내할 수 있을만한 크기의 스트레스를 자발적으로 느끼는 것입니다. 그리고 끝내 목표를 달성하여 스트레스가 해소되는 과정을 즐기는 것이죠.

용사의 성장은 곧 나의 성장

최근에 ‘젤다의 전설 : 스카이워드 소드’의 엔딩을 봤습니다. 출시된 지 꽤 된 게임이고, 그 직후에 구매해서 바로 플레이했었는데요. 가장 마지막 보스전을 플레이하다 죽은 이후로 다시 건들지 않고 방치해두고 있었습니다.

스카이워드 소드는 아주 독특한 조작 방식을 택한 게임입니다. 닌텐도 스위치의 자이로 센서를 이용해서 손에 쥔 조이콘을 마치 진짜 검처럼 사용해야 하는데요. 내가 조이콘을 위에서 아래로 휘두르면 세로 베기를 하고, 가로로 휘두르면 가로 베기를 합니다.

내가 링크와 한 몸이 되어 조이콘을 대각선으로 휘둘러야 합니다. 이 모습을 누가 보면 뭐라고 생각할까 싶은 현타는 덤입니다.

내가 링크와 한 몸이 되어 조이콘을 대각선으로 휘둘러야 합니다. 이 모습을 누가 보면 뭐라고 생각할까 싶은 현타는 덤입니다.

이 조작법의 정점은 검에서 스카이워드라는 에너지를 내뿜는 기술인데요. 조이콘이 천장을 수직으로 바라보도록 한참 들고 있다가 에너지가 충전되면 발사하고 싶은 방향으로 조이콘을 휘두르면 됩니다. 내가 조이콘을 휘두르는 모습과 동일하게 화면 속 주인공이 검을 휘두르기 때문에 아주 직관적이고 흥미로운 조작법이 아닐 수 없죠.

그런데 흥미로운 것은 흥미로운 거고 게임의 재미는 별개입니다. Wii 하드웨어에 탑재된 자이로 센서를 이렇게 써먹으세요, 하고 개발자에게 사례집을 내주고 싶었던 건지는 모르겠으나, 어쨌든 결과적으로 유저에게 편리한 경험은 아니었습니다. 일단 현실 인간은 용사 링크와 달리 조이콘을 휘두르는 모습이 엉망진창이기 짝이 없죠. 자이로 센서가 그 세세한 움직임을 다 인식할 수 있을리 없고 (인식했어도 물론 문제긴 했을테지만) 결과적으로는 내가 원하는 대로 검의 방향이 나가질 않으니 에라 모르겠다는 심정으로 미친 듯이 조이콘을 휘두르다 책상 위 물컵을 쳐서 바닥에 떨어지기 일수입니다.

최종 보스전에서 죽고 나니 그렇게 누적된 스트레스가 폭발하여 게임을 꺼버렸습니다. 얼추 1년은 지나고 나서 여유 시간이 생긴 김에 아예 처음부터 게임을 플레이했습니다. 그 이전에 270시간동안 플레이한 ‘젤다의 전설 : 왕국의 눈물’ 덕분에 반사 신경이 조금이나마 단련된 건지, 생각보다 수월하게(지만 여전히 엉망진창으로) 보스전까지 클리어하고 엔딩을 봤습니다.

다만 여전히 플레이 과정 내내 스트레스가 누적됐기 때문에 중간 보스전이 다가올 때마다 그거 하나 들어가기 싫어서 괜히 딴 일을 하면서 미뤄댔습니다. 결국 심호흡 몇 번 후에 진입하면, 실제로 조이콘에 땀이 묻을 정도로 긴장하고 플레이했는데요. 대부분의 보스전을 죽지 않고 한 번에 깰 수 있었습니다. 그때마다 이런 생각을 했습니다. 마치 이 중간 보스전을 깨는 과정이 ‘스트레스를 정면으로 마주하는 법을 배우는 과정’ 같다고.

유슈트레스가 게임의 재미를 가져다주는 과정의 핵심은 ‘자발적인’ 선택입니다. 동시에 그 스트레스의 양이 ‘감내할만’한지도 중요한 변수로 작용할 것입니다. 나에게 적절한 용량의 스트레스를 발생시키는 게임을 찾는 것도 중요하겠지만 한편으로는 게임이 나의 스트레스 내성을 늘려주기도 합니다.

이 책에서는 굉장히 다양한 게임 사례와, 그 게임이 어떻게 현실의 변화를 이끌어 냈는지를 소개합니다. 그저 한 명의 개인으로서 “당신이 게임으로 변화한 사례를 하나 꼽아주실 수 있나요?”라는 질문을 받는다면 아마 이 때의 경험을 꼽을 것 같습니다. 압도적이고 무섭기 짝이 없는 난관도 막상 뛰어들면 별게 아닐 수 있고, 설사 실패했어도 다시 시도하면 된다고. 감내할 수 있는 환경에서 감내할 수 있는 방법으로 얻은 경험이 뻔한 위로의 말을 비로소 받아들이게 만들었습니다. 게임이 저를 조금이나마 바꾼 사례였습니다.